수은공 4세 위민

관작 大提學

竹軒

정부인 하동정씨 부는 감사경

문망(文望)이 높았는데 정종 기묘년(1399년)에 생원시에 합격하고 태종 신사년(1401년) 증광문과에 합격하여 검성사인과 홍문관 대제학을 지냈다. 무신년(1428년)에는 금산고을을 다스렸는데 영벽루를 지었고 여러 선비들과 시회를 열었다.

 

공의 문장은 1세에 빛났으나 유고가 전하지 못함이 안타까운 일이다. 효우(孝友)가 독실하시어 공이 살던 광주 효우동의 이름이 공의 행적을 따서 불리고 있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