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은공 7세 경로

惺淑(성숙)

1548년(무신년)

정유년 8월 16일

관작 漢城判尹

정부인 김씨 부는 충의위응성

정유재란(1597년)때 전라방어사로 남원성에서 만인의 의사와 옥쇄하신 공은 아버지 원공의 5자중 3남으로 자헌대부 한성부판윤에 증직되어 판윤공이라 한다.
   선조 병자년(1576년)에 무과에 급제하여 부장, 비변낭, 전라도 군기창 차관을 거쳐 함경도 경성판관을 역임하면서 치적이 높았다. 선조 25년(1592년) 임진왜란이 터지자 공은 조방장(助防將)이 되어 적 30여 수급을 베고 평양으로 패주하는  소서행장군을 황해도 방어사 이시언과 함께 퇴로를 막아 큰 전과를 세웠다.
   정유재란 때는 전라방어사로 전주에 주둔하던 중 왜적이 남원에 들이 닥치자 순천에 주둔한 병사 이복남과 감밭에서 합류하였다. 군사는 명나라 총병 양원이 거느리 3천병마 뿐이라 며칠을 못버티고 함락될 것이나 군중에 명하기를 "종군을 원하는 자는 남고 원치 않는 자는 돌아가라"하니 자원하는 자가 임사미 등 수 백인이라 이 들을 격려하여 적진을 뚫고 진격하니 적들이 패주하였다.
   이를 본 명장 양원이 "조선에 남자는 오직 두 장군뿐이다"라고 칭찬하였다. 이후 성안 백성과 끝까지 싸웠으나 힘이 다하여 남원성과 함께 전원이 옥쇄하니 그 수가 만여명이라 시신은 모두 남원 만인의 총에 묻혔다. 충혼을 기리기 위한 충열사에 접반사 정기원,이병사, 공과 남원부사 임현 등 4충을 모시기 시작했다.